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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953년 1월 5일, 파리의 작은 소극장에서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 는 그 난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300회 이상 장기 공연되며 연극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영국의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에 의해 ’부조리극‘ 이라고 칭해지게 되며, 단순한 베스트셀러가 아닌 새로운 연극 장르의 선두주자로서 자리잡게 된다.

그렇다면 ‘부조리극’ 이란 어떤 장르일까? 궁금증이 들어 찾아보았다. 부조리극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의 ‘부조리‘ 와 연극의 합성어로, 서사나 인물보다는 불확실한 세계에 놓인 인간의 상황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의 내용은 단순하다.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 무대 위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한담을 나눈다. 대화는 어떠한 주제를 지향하지도 않으며, 전혀 생뚱맞은 질문과 관련 없는 대답이 공허하게 날아다니고, 역동적인 사건이나 격동하는 감정선도 없다. 그들은 극 내내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해 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나는 이 연극. 과연 기승전결이 존재할까? 애초에 ‘시작’ 과 ‘끝’ 을 정할 수 있을까?

연속적인 인생에서의 한 단락

연극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에스트라공: 멋진 경치로군. (블라디미르를 보며)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은 ‘가자.‘ 고 말하고, 블라디미르는 ‘안 돼, 고도를 기다려야지.’ 라고 붙잡는 이 대화 패턴은 책을 통틀어 열 번 남짓 반복된다. 이들은 이 극이 시작하는 시점 이전부터 고도를 기다려왔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 끝나는 시점에도 계속 고도를 기다릴 것을 암시한다.